바다는 정말 경이롭지 않아요?
언젠가 메리스빌에 살 때였는데
토머스 아점시가 화물차를 빌려와서
우리를 전부 태우고
16km 정도 떨아진
바닷가로 놀러갔어요.
그날도 내내 아이들을 쫓아다녀야했지만,
그래도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즐거웠어요.
그런데 여기 바닷가가 메리스빌의 바닷가보다
더 멋있어요.
- 빨강머리앤 중
"우리 바다보러가자!"
교회 주일학교 교사 모임이 끝나고 한 오빠가 외쳤다.
"바다요?"
나는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웅성웅성하더니 이내 교회 봉고차 안에 인원 맞게 교사들이 앉았고 휩쓸려 같이 바다로 갔다.
'도대체 그 먼 바다를 이 저녁에 어떻게 간다는 거야?'
하지만 나의 걱정도 잠시, 몇 십분 달리고 나니 바다에 도착했다.
그 바다는 월미도였다.
서울에도 이렇게 가까운 바다가 있다고?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여학생 둘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우연히 들었다.
A: 나 기분이 너무 울적하거 생각할게 많아서 바다에 갔어.
'생각을 하러 바다로 간다고?'
B : 너 인천 같구나.
A : 어떻게 알았어?
B : 여기서 갈 바다가 인천 밖에 더 있냐? 그래서 생각은 잘 정리하고 왔어?
무려 스무살이 넘은 나이었지만.. 나는 A가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인천을 간 다음 그 곳에서 다시 택시나 마을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갔다고 생각했다. 인천까지 지하철이 연결되어있고,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인천 바닷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그 인천 바닷가가 어느 날, 밤 훌쩍 다녀왔던 그 월미도라는 것도 20대 후반에야 알았다.
지독하게도 내가 살던 사대문 안 밖에 몰랐던 아이였다. 나의 엄마 말로는 본인은 서울을 벗어나면 큰 일이 나는 줄 알고 평생 살았다고 한다. 진작 알았으면 지방이나 신도시의 저렴하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살걸... 지방에 가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단다. 그 영향인지 나 또한 집에서 지하철로 20분 걸리는 대학에 붙었을 때에도 내가 공부를 못하니 변두리 대학을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서울 촌년'이란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태어나 꼭 두 번째로 바닷가를 본 앤은 황홀함에 빠진다. 그런 앤처럼 나 역시 몇 번 황홀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터키였는데, 이스탄불은 이슬람 문화와 유럽의 건축 양식이 한데 어우러진 묘한 도시였다. 그 이국적인 풍경에 푹 빠졌다. 그리고 20대 중반, 처음 남해 여행을 갔는데,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얼마나 황홀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풍경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꽉 틀어박혀있던 좁은 나의 시야와 생각을 조금씩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은 여행을 하기 전, 미리 SNS 사진으로 건물 내부나 풍경을 다 보고 가기 때문에 여행지의 풍경이나 분위기에 푹 빠지는 정도가 덜한 것 같다. 글자로 가득한 흑백 가이드 북을 들고 찾아다녔던 여행이 시간이 지나도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어쩌면 그 예고없는 강렬함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여행은 나에게 오랫만에 강렬함을 선사했던 여행지였다. 그도그럴 것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녔던 곳이 아니라서 SNS에서 사진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관광청이나 발물관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준비를 하다보니 막상 섬을 돌면서 느꼈던 풍경은 정말 예상치 못한 벅참을 선사해주었다. <빨강머리앤>이나 <꿈꾸는 에밀리>를 통해 몇 번이나 상상 속으로 여행을 왔던 곳인데,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을 찢고 나온 듯한 풍경이 계속 펼쳐졌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하는 제 처지를 그만 잊어버리고 만 앤처럼 멋진 풍경 속에서 잠시 자의 현실을 잊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