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지붕 집의 앤이야.
내가 코딜리어라고 상상할 때마다
주근깨투성이에 잿빛 눈동자를 가진
네가 보여.
하디만 집 없는 앤보다
초록색 지붕 집의 앤이
백만 배는 더 좋지 않니?
안녕, 눈의 여왕님!
다이애나가 내게 마음의 친구가 되어줄까요?
앤은 늘 자신을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하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초록색 지붕집에 머물기로 정해진 날도 앤은 자신은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상상으로 이 방을 꾸며야지. 바닥에는 분홍 장미 무늬가 있는 하얀 벨벳 카펫이 깔렸고, 창에 분홍 실크 커튼이 드리워졌어. 이건 소파고 분홍색, 파란색, 진홍색, 황금색의 휘황찬란한 실크 쿠션이 가득 놓여있지. 난 그 위에 우아하게 기대어 앉아 있는 거야.
나는 키가 크고 위엄이 넘쳐. 하얀 레이스가 달린, 길게 끌리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가슴에 진주 십자가를 드리웠고 머리에도 진주 장식을 달았어. 멀이칼은 칠흙같이 검고 피부는 투명하고 창백한 상아색이지.
내 이름은 코딜리어 피츠제럴드 공주야."
하지만 예전처럼 몰입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을 하여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행색이 현실로 다가왔다.
더이상 상상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앤의 상상력이 떨어졌다거나 앤이 갑자기 성인이 되면서 동심을 잃어버린 탓은 아니었다.
앤은 이후로도 초록색 지붕집 이 곳 저 곳에 독특한 이름을 붙이며 상상을 나래를 펼쳤고
또래 여학생들과 이야기회를 조직하여 자신이 상상한 스토리를 나누곤 했으니까.
더이상 앤은 상상으로 자신의 현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앤은 오롯이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였다.
드디어 주어진 현실이 어린 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넌 그냥 초록색 지붕 집의 앤이야. 내가 코딜리어 공주라고 상상할 때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인 네가 보여.
하지만 집 없는 앤보다 초록색 지붕 집의 앤이 백만 배는 더 좋지 않니?"
나의 꿈은 공상가였다. 무언가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놀라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영재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상상을 하지 않으면 현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동화나 소설 작품을 읽었다. 그 안에 푹 빠져 내가 주인공이 된 것같이 몰입을 하였다. 그 덕에 초등학생 때는 '독서왕' 상을 몇 차례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독은 나에게 높은 언어영역 점수나 뛰어난 작문 실력으로 보답하지 않았다. 수없이 읽어댄 책은 그저 내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선택했던 도피처로서의 역할만을 충실하게 했다. 책 안에서 나는 안전했고, 부유하고, 행복할 수 있었다.
스무살이 되면서 책을 읽지 않았다. 대신 나는 다른 방법으로 상상의 도피처를 찾았는데, 바로 미래의 내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한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수업 후, 친구들과 술을 사먹을 돈이 없어 자진하여 아싸(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어울릴만한 친구도 없이 대학을 다녀야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게다가 학교를 다니기 위한 최소한의 차비와 밥값을 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했다. 대학이라는 시간이 긴 터널과 같이 느껴졌다. 졸업 후, 취업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꿈꾸는 회사로 이직을 한 내 모습을 자꾸 꿈꾸고 그리고 상상하며 잠에 들었다. 그래야 견딜 수 있는 하루하루였다.
나는 사실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긍정확언을 믿지 않는다. 최근에야 알게 된 개념들인데, 나는 그 누구보다도그 이론의 가르침대로 간절하고 생생하게 수십년 동안 끌어당겨왔다. 하지만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ㅎㅎ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은 수십년동안 간절하게 끌어당겼던 것들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상상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며 끌어당기거나 긍정확언을 하다가 실망하여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개념도 몰랐고, 어느 순간, 그냥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었다.
아마도 결혼 후,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풍족하거나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더이상 현실이 괴롭지 않았다. 타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웠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는 육아대백과사전의 정석처럼 개월수에 맞게 잘 자라주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가정적이었고, 가족들을 데리고 이 곳 저 곳 여행을 다니는 것만이 유일한 낙인 사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며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현실이 녹록치 않은 것은 여전하지만, 상상으로 나를 위안하고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지방의 작은 아파트이지만 깨끗한 내 집이 있고, 함께 인생을 걸어갈 배우자가 있고, 아이는 체력적으로 힘들게 하지만 나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커리어도 잘 유지하며 일궈가고 있다.
비록 의지할 부모가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외딴 타지에서 살고 있지만 충분히 직면하고 감당하며 살 수 있을 정도의 현실을 비로소 마주한 것이다.
때로는 그 시절의 상상력이 그립기도 하다. 이렇게 글을 쓸 때면 말이다. 무미건조하고 상상력이란 하나도 없이 이론과 지식으로만 가득찬 책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는 예전처럼 나의 미래를 상상하거나 내 현재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신선하고 색다른 공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썸머 이야기 >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 에이본리에서 마음의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0) | 2021.10.16 |
---|---|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 소매가 볼록한 원피스 꼭 한 벌만 갖게 해주세요! (0) | 2021.10.16 |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 잘자요, 반짝이는 호수님 (0) | 2021.10.14 |
초록색 지붕 집으로 가는 길 // 네비를 정확히 찍자. 에.이.본.리. (0) | 2021.10.09 |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 마음껏 말하려무나. 나는 괜찮다. - 매슈 (0) | 202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