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사람들이 항상 제게 그러거든요.
조용히 하고 있을까요?
그러시라면 그럴게요.
마음만 먹으면 말을 안 할 수 있어요.
힘들기는 하지만요."
"마음껏 말하려무나.
나는 괜찮다."
- 빨강머리앤 중
매슈는 분명 앤과 함께 살지만 대사도 적고, 극에 개입하는 경우도 드물다. 대사 분량으로 따지면 거의 미니메이나 제인 앤드류스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매슈는 소설의 초반에 성격이 모나고 엉뚱한 말을 하는 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는 몇 안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스펜서 부인과 마릴라는 앤의 수다에 질색을 했다. 린드 아주머니는 앤이 버릇없다며, 제리는 앤이 혼자 중얼거린다며 이상한 소문을 에이본리에 내었다. 날것 그대로의 앤을 포용해준 것은 매슈와 다이애나 뿐이었다.
매슈는 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유일한 성인이었다. 초록색 지붕집에 오기 전까지 앤은 함께 사는 성인들에게 노동력에 불과하였고, 어울릴 또래도 마땅치 않았던 앤은 혼잣말에 익숙해져있었다. 더군다나 시대 상, 아이들의 이야기를 어른이 주의깊게 들어줄리도 만무할 것이다. 하지만 매슈는 억지로 들어준 것이 아니라 앤의 상상이나 끝없는 수다를 무척 즐거워하기까지 했다. 한 사람이라도 편견없이 진지하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런 면에서 마음껏 말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고 지지해주는 매슈를 곁에 두고 있는 앤이 늘 부럽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은 작가로 태어난 이들의 숙명같이 느껴진다. <빨강머리앤>의 저자 루시 몽고메리의 작품에는 몽고메리의 분신들이 나온다. 가장 유명한 캐릭터가 앤이며, <꿈꾸는 에밀리>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에밀리도 있다. 이들은 모두 타고난 이야기꾼들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데 안타깝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그저 방대하고 끝없는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소비해줄 독자를 찾아나며 글을 쓰게 된다. 앤은 이야기회를 조직하여 매주 소설을 써서 함께 읽는 모임을 만들고, 에밀리 역시 지인들을 통해 우편으로 자신의 소설을 세상에 알렸다.
나 역시 남편이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블로그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이 몇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매슈 아저씨처럼 주의깊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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