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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이야기/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 정말 멋지게 해냈어, 앤

 

 

 

 

 

 

 

 

 

 

 

 

 

 

 

 

 

 

 

 

 

 

 

 

 

 

 

 

 

 

 

 

 

 

 

 

 

 

 

 

 

 

 

 

 

 

 

 

 

 

 

 

 

 

 

 

 

 

 

 

 

 

 

 

 

 

 

 

 

 

 

 

 

 

 

 

 

 

 

 

 

 

 

 

 

 

 

 

 

 


 

 

 

 

 

 

다이애나 : 앤, 합격했어. 1등으로 합격했어. 너랑 길버트랑 같이, 공동 1등이야. 그래도 네 이름이 맨 위에 있어. 아, 정말 자랑스러워! 정말 멋지게 해냈어, 앤.

 

매슈 : 거봐라, 내가 그럴 거라고 늘 말했잖니. 네가 수월하게 1등을 해낼 줄 아고 있었다.

 

마릴라 : 아주 잘해냈구나, 앤.

 

린드 아주머니 : 앤이 정말 잘한 것 같군요. 이런 칭찬은 받아야지. 친구들한테도 자랑거리가 되겠구나, 앤. 우리 모두 네가 자랑스럽단다.

 

 

 

 

 

 


 

 

 

 

 

<빨강머리앤>은 나에게 재미를 주기도 하였지만, 나를 자극하는 자기계발서가 되기도 했다. 앤의 퀸학원 수석 입학건은 조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학교에 가본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교육에서 방치되어있던 고아 여자아이가 3년 만에 모든 아이들을 따라잡은데 모자라 한국으로 치면 도내 1등의 영예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아침마당에 초대된 사법고시 합격자나 서울대 합격자 이야기 에서나 볼법한 이야기같다.

 

이는 소설 안에서도 매우 극적인 사건이어서 다이애나, 매슈 아저씨, 마릴라 아주머니 그리고 우연히 참견코자 들린 린드 아주머니까지 합세하여 격렬하게 축하해준다. 당시 합격자 발표는 샬롯타운 신문에서 하였기 때문에, 앤은 매일같이 에이본리 우체국에 들려 신문을 살펴보며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이애나의 아버지가 브라이트 리버 역에서 신문을 가져와주었는데, 이 신문들은 기차를 타고 에이본리 우체국에 다음 날이나 도착하기 때문이다. 다이애나의 아버지 덕분에 에이본리 수험생들은 빨리 결과를 알게 되었다.

 

에이본리 마을에서 이 우체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기에 다른 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것이다. 앤은 퀸 학원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다이애나에게 편지를 보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다음 날이면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시로써는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그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여유로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에이본리의 실제 지명은 캐번디쉬(Cavandish)인데, 이 곳에는 1907년에 지어진 우체국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 한 켠은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당시 우체국 모습을 볼 수 있고, 다른 한 켠에서는 실제 우체국이 운영되고 있다. 몽고메리는 우체국에서 일하며 짬짬이 <빨강머리앤>을 집필했다. 몽고메리도 작품이 대박나기 전까지는 투잡을 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하고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다.

 

앤은 여기에서 더 그치지 않는다. 퀸 학원을 졸업할 때에는 신설된 에이본리 장학금을 타는데 무려 레드먼드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250달러씩 주었다. 또한 남들은 2급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동안, 앤은 같은 시간 더 열심히 공부하여 1급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한다. 앤은 후에 이 자격증을 가지고 교사 생활을 하는데 중학교 교장까지 역임한다.

 

앤의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류 소설가를 꿈꾸게 되는데, 비록 출판사로부터는 모두 까였지만 다이애나가 한 밀가루 회사의 공모전에 앤의 소설을 몰래 응모하여 많은 사람들이 앤의 소설을 즐겁게 읽게 되기도 한다. 남편 길버트는 의사인데가 엄청난 애처가이니 부부 생활도 화목하다. 여기에 더해 여섯 명의 자녀까지 키우니... 그야말로 주인공 버프를 받아 소설 속 세상을 마음껏 누비며 사는 앤이다.

 

그 시절 모든 여성들의 판타지가 집약된 이 소설을 나는 진지하게 자기계발서로 받아들였다. 나도 앤처럼 입고 갈 옷이 없고, 성격도 모나고 못생겼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앤처럼 살겠다는 의지가 참 강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현실과 허구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판타지에 종종 빠지는 것은 마흔이 가까워진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점이라면 그 덕에 내 삶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과 다르게 현실의 나는 좌절을 너무 많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가슴 속에 희망을 품되, 냉청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균형잡기는 아직도 계속된다. 그래도 나의 마음의 친구, 앤 만큼은 제약없이 마음껏 상상하고 꿈을 이루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