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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이야기/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초록색 지붕 집으로 가는 길 // 앤, 너는 내 딸이란다

 

 

 

 

 

 

 

 

 

 

 

 

 

 

 

 

 

 

 

 

 

 

 

 

 

 

 

 

 

 

 

 

 

 

 

 

 

 


 

 

 

 

 

 

매슈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푸른 여름밤을 수놓은 별빛 아래서

그는 격양된 걸움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포플러나무 옆으로 난 울타리 문까지 걸어갔다.

매슈는 자랑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래, 앤이 버릇없는 아이로 자란 것 같진 않아.

가끔쌕 내가 간섭한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게야.

저 아이는 똑똑하고 예쁜데다

다정하기도 하고, 그게 무엇보다 좋은 점이지.

 

저 애는 우리에게 축복이었어.

스펜스 부인이 저지른 실수보다

더 운 좋은 실수는 없을거야.

그걸 운이라고 한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건 운이라고 할 수 없어.

하늘의 뜻이었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 애가 필요하단 걸 아신 거야."

 

 

 

 

 

 

 


 

 

 

 

 

 

 

 

 

 

 

 

 

매슈 아저씨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말수가 적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이상하다거나 독특하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었다. 외모까지 특이하다보니 여성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여성들과는 대화도 제대로 못했다. 마을에서도 사람들과 가능한 제일 멀리 떨어진 초록색 지붕집에서 감자 농사를 짓기 때문에, 매슈는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없이 자신 만의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설정 탓에 소설에서 매슈의 대사란 린드 아주머니보다도 적었고, 등장 분량은 다이애나보다도 훨씬 적었다. 초록색 지붕집에서 배경처럼 식탁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거나, 말없이 소파에 누워 신문을 읽는 장면을 모두 포함시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성격의 매슈지만 그는 고요한 자신의 삶에 끼어들어 좌충우돌 사건을 만들어내는 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앤은 매슈의 좁디 좁은 세상을 조금씩 밖으로 열어준 존재이기도 하다. 앤 덕분에 매슈는 조금씩 사회 속에서 어울리는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과도하게 말이 많았던 열 한살 앤과 과도하게 말이 없었던 예순 살 매슈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매슈는 소설 안에서 앤 만큼이나 놀라운 성장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적은 분량의 대사이지만 그의 말에는 힘이 있어 소설의 후반부에는 울림을 주는 묵직한 메세지를 전하기도 한다. 

 

초록색 지붕집의 매슈와 마릴라는 매슈의 농장일을 도와 줄 남자아이를 원했다. 하지만 스펜서 부인의 실수로 남자아이 대신 깡마른 여자아이가 초록색 지붕집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실수는 두 남매에게 '축복'이 되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똑똑한 앤은 두 남매가 부모로써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고, 매슈가 떠난 초록색 지붕집에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도 실수나 절망, 실패였던 일들이 전화위복이 된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일은 결코 흔치는 않지만 오랜 세월 지나고 보았을 때, 아주 가끔은 도리어 잘된 일이 되어버린 사건들이 있다. 나의 경우에도 몇몇 그런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도전하였던 일들이 모두 실패가 되어버리고 결국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버린 일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힘들게 합격한 대학원을 학비가 없어 휴학을 하였고, 하릴없이 텃밭에서 농사나 짓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아이를 낳게 되어 육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아직 아이가 어려 잠을 많이 잤기 때문에 아이가 낮잠을 자는 2시간, 밤잠을 재우고나서 3시간 씩 유튜브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번듯한 풀타임 직장이 있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과 살림은 고됬지만 시간의 유연성은 확보되었기에 해보고 싶었던 딴짓을 실컷했다.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고, 네이버 카페를 운영했고, 그렇게 풀어낸 나의 이야기들이 모여 책으로 출간되었다. 평생 꿈꾸었던 전업 작가가 된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경험들이 모여, 나는 실패하거나 힘든 상황에서도 기회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00를 해보자.' '차라리 잘되었다.'라고 말이다. 플랜 A가 실패한다는 것은 어쩌면 플랜 B를 실행해볼 수 있는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여자아이였던 앤을 받아들여 삶이 더 풍요로워졌던 매슈와 마릴라처럼 때로는 인생이 선물하는 실수나 실패를 받아들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