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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이야기/초록색 지붕집으로 가는 길

초록색 지붕 집으로 가는 길 // 정말 근사한 밤이었지?

 

 

 

 

 

 

 

 

 

 

 

 

 

 

 

 

 

 

 

 

 

 

 

 

 

 

 

 

 

 

 

 

 

 

 

 

 

 

 

 

 

 

 

 

 

 

 

 

 

 

 

 

 

 

 

 

 

 

 

 

 


 

 

 

 

 

 

제인 : 정말 근사한 밤이었지? 나도 부유한 미국 사람이 돼서 호텔에서 여름을 지내고 싶어. 보석으로 치장하고 목이 깊게 파인 드레스도 입고, 아이스크림이랑 닭고기 샐러드도 먹으면서 날마다 즐겁게 보내면 좋겠어. 분명 그쪽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을 거야. 앤, 네 시 낭송은 정말 멋졌어.

앤 : 글쎄,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평생 다이아몬드로 위로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 나는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색 지붕집의 앤에 아주 만족해. 매슈 아저씨가 이 목걸이에 담아 주신 사랑이 분홍 드레스 아주머니의 보석 못지않다는 걸 아니까.

 

 

 

 

 


 

 

 

 

 

 

 

 

 

 

 

 

 

여름을 보내기 위한 미국 부호들은 프린스 에드워드 섬, 화이트샌즈(흰모래마을)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에이본리에서 호화롭다거나 고급스러운 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반드시 이 호텔에 와야했다. 마땅히 다른 선택지가 없을테니까. 하하. 앤은 꼭 한 번 이 호텔을 이용하였는데, 다이애나의 아버지가 앤과 다이애나를 데리고 호텔에서 저녁을 사준 일이다.

 

화이트샌즈 호텔에서는 콘서트가 열리곤하는데, 재능있는 섬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앤은 퀸 학원 합격자 발표가 나고 입학을 하기 전, 이 콘서트에서 낭독을 맡게 된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다이애나가 옷 선정과 머리 장식을 맡았고, 매슈가 시내에 나가 사온 진주목걸이까지 하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이게 왠걸! 미국의 부호들은 실크 드레스나 레이스 장식으로 가득한 드레스를 입고, 반짝이는 다이아 목걸이를 두르고, 온실 꽃으로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앤은 갑자기 부끄럽고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용기를 낸 앤은 멋지게 낭송을 해냈고, 콧대높은 미국 부호들은 앙코르를 외치며 칭찬을 쏟아냈다. 앤과 친구들은 만찬에 초대를 받아, 아름답게 꾸민 큰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즐겼다. 함께 동행하였던 제인은 부미국 부인들의 화려한 다이아몬드나 호텔에서 보내는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앤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과 그 것을 멋지게 해내었다는 성취감에 도취된 눈치였다. 어쨌든 화이트샌즈 호텔에서의 콘서트와 만찬은 앤과 친구들 모두에게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나는 평생을 절약에 집착하며 살았다. 절약은 부모에게 유일하게 배웠던 경제교육이었고, 생존방식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한 사람이었다. 짠돌이 짠순이,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이 박사 졸업을 하고 한국에 직장을 잡기전까지 9년 간의 결혼생활에서 우리는 변변찮은 가구나 가전제품도 없이 살았다. 구형 노트북으로 TV를 보고, 다른 유학생들이 몇 십불에 파는 중고 물건들을 구입해 썼다. 식비 또한 철저하게 관리하여, 알뜰살뜰 김밥, 수제비, 볶음밥, 떡볶이, 월남쌈, 짜장면, 각종 전 등을 만들어먹고 식재로도 살뜰하게 관리했다. 몇 백원이나 몇 천원을 절약하기 위해 한두시간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바로 내가 나의 욕구와 욕망을 철저하게 통제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욕구나 욕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10평대의 작은 빌라에 살고 있었는데, 우리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왜 넓은 평수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유행하는 제품이나 음식은 왜 유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절약은 나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으로 만들 뿐이었다. 힘들게 아낀 돈은 계속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다. '도대체 왜 그런데 돈을 써?'하고 생각하여 정작 써야할 때는 벌벌 떨면서 누리지도 못하고 좋은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정반대로 큰 돈은 엉뚱하게 새어나갔다. 평생 원망했던 나의 부모가 보여준 경제 패턴을 나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모을 줄만 알았지 쓰고 투자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답답했던 우리 부부의 시야를 트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사치들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호텔 체인을 이용할 기회들이 많았다. 늘 제일 저렴한 호스텔, 돈을 투자하면 펜션에 머물렀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고급스러운 호텔을 가거나 미술 작품을 종종 접하고, 정갈한 외식을 이따금한다. 새로운 경험을 계속 하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나의 안목이나 선택, 생각, 가치관이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마릴라의 표현으로는 허영심만 부추기는 화이트샌즈의 콘서트 사건은 에이본리 소녀들에게는 큰 영향력을 끼쳤다. 제인은 부자와 결혼하여 화려한 삶을 사는 부인들을 직접 만나며 그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 위니펙(Winnipeg) 지역의 백만장자와 결혼을 한다. 그녀가 그토록 꿈꾸었던 다이아몬드들과 눈이 부신 새틴 웨딩드레스를 입고 말이다. 앤의 경우에는 큰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을 압도하는 화려한 호텔 내부와 호화로운 차림의 부자들 속에서 당당하게 갈채를 받았던 경험은 힘든 퀸 학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가끔은 스몰 럭셔리도 중요하다. 물론, 아직은 매일 그런 삶을 살 수 없을지 몰라도 힘든 삶을 버틸 수 있도록 또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되어줄 귀한 경험과 추억이 되어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