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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이야기/경제적 독립 프로젝트

가난의 대물림 끊기 // 내 대에서 흙수저 유전자 혁명을 일으키다

 

 

 

 

우리는 한국에 2020년에 들어왔다.

부동산은 그야말로 불장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강남대로를 걷다가

호객행위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휴지를 받았다.

그러니 아주머니는 자연스럽게 나를 오피스텔 분양사무실로 안내했다.

알고보니 휴지를 받으면 가야하는 거였다.

오전 일찍 움직인탓에

나는 그 호객 아주머니의 첫 손님이었고,

아주머니의 하루 일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설명을 들었다.

 

 

그곳에서 만난 오피스텔 영업사원은

나의 거주지역을 듣더니

자신이 파는 오피스텔 대신,

고덕 아파트를 하나 사라고 했다.

고덕이 5억이라니 미쳤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덕이 5억이라는 것만 보고,

내가 평생 살던 마포구는 15억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부동산 가격은 지역에 따라 상대으로 봐야하는데

나는 10년 전 가격에 비교하며

가격이 비싼지 저렴한지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도 고덕에 대해 알아보려고

단톡방이나 카페에 기웃거렸다.

하지만 그 곳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고덕 폭등열차 가즈아!!!!
고덕 10억 가즈아!!!



 

 

댓글로는 의견이 분분했다.

고덕이 10억 찍을거라는 상승론자들과

이들을 투기꾼이라 비난하며 이 투기꾼들 덕분에

실수요자들은 신축 아파트를 저렴하게

전세로 살 수 있다며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있었다.

양측은 서로를 어리석다며 비웃고 공격했다.

 

 

'나도 모르겠다~' 싶었다.

이미 분양가에서 값은 오를대로 오른 덕에

P를 지불할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들의 댓글 다툼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저렴하게 세를 사는 내가 똑똑하며

프리미엄, 각종 세금, 감가상각까지 감당하며

집을 산 사람들이 어리석다며

속으로 비웃던 과거의 내 모습 말이다.

 

 

그리고 진짜 어리석은 사람은 나였음을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나서야 깨달았다.

 


 

다시 8년 전으로 기억이 돌아간다.

당시, 나는 월세 신혼집을 얻고 다시 부동산에 내놓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여러 사람들과 일이 얽히게 되었다.

 

 

내가 살았던 월세집은 아주 작은 신축빌라였는데.

지하철역과 버스역에서는 걸어서 3-5분이었고

빌라지만 엘리베이터도 있고

큰 마트와 은행, 근린공원, 병원 등이 잘 갖추어져있었다.

 

 

직장을 다니기에는 좋았고

아이를 키우기에는 학군이 썩 좋지 않았고,

고등학교가 없었다.

하지만 교통망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에

월세나 전세 수요가 끊이지 않았다.

 

 

한 번 이 동네에 전세든 매매든 정착한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기가 아주 힘들 정도로 저렴했다.

 

 

계약기간 이전에 월세를 빼야했고

집주인은 다음 세입자를 받아야

보증금을 준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웬걸...

월세를 내놓겠다고 부동산에 말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옆 라인에 살던 노부부는

나와 부동산 중개인에게 하룻밤만 시간을 달라며

우리 집을 구경하는 동시에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몇 정거장 뒤에 살던 한 싱글남성은

바로 돈을 쏘겠다며 대기했다.

 

 

집을 내놓은지 1주일 만에

다음 세입자가 결정될 정도로

수요가 많은 곳이었다.

 

 



 

 

 

 

옆 라인에 살던 노부부는

우리 집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월세로 살았는데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는 전세로 계약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더 조급해하셨다.

노부부도 이 집에 전세로 살고 있었고,

초등학생 자녀가 2명 있는,

그들의 아들.며느리도 같은 지역에서 전세로 살고 있었다.

전세값이 계속 올라서 아들 부부는

더 저렴한 전세집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했던 할머니는 우리 집을 둘러보며

실시간으로 며느리와 통화했고

수화기 너머로 조급한 고부의 대화가 들어왔다.

우리집은 가격과 입지는 맞았지만

네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전화로 옥긴각신하다가

결국 우리 집에는 들어오지 않기로 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다시 전전긍긍하며

조건에 맞는 전세집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지금와서 다시 살펴보니...

내가 살았던 것 같은 크기의 작은 신축빌라는

2013년 전세가로 8-9천만원이었는데.

2018년에는 아주 약간 더 큰 신축빌라의 전세가 1억 6천이었다.

현재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는 매물로도

비슷한 크기와 입지, 연식인 빌라가

전세가 모두 1억 중반은 된다.

 

 

빌라 전세가격이 2배로 상승했다.

매매가는 같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먼~ 미래에

언젠가는 지하철역이 하나 더 생긴다고 하니

매매가도 오를 일만 남았다.

 

 

집주인만 좋은 일이다.

 

 

흙수저는 부모에게서
이 무형의 자산을 못 물려받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부모의 제로에
가까운 금전감각까지 물려받습니다.
사실은 이쪽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가난도 DNA와 같아서 유전이 됩니다.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자기가 보고 자란 바대로
행동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극복해내고
열심히 살다 못해 내 집까지 샀다는 건
내 대에서 유전자 혁명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30대 영끌족에게, 삼호어묵

 

 

 

 

그 때 다급하게 통화를 했던 할머니와 며느리는

아직도 2-4년마다 올라가는 전세에 쫓기듯 살고 있을까?

 

 

노부부는 작은 빌라에 전세로 살았고

그 부부의 장성한 자녀 역시 전세로 살았다.

아마도 그 자녀들은 무의식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 또 전세나 월세를 구할 것이다.

 

 

그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지만

집을 구입하지는 않는 사람들.

내가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이 거주는 하지만

내 돈주고 사고 싶지는 않은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할머니.할아버지가 깨어있어서

집 하나를 샀더라면

그리고 자신의 아들에게도 집을 사서 시작하라고 말해줬더라면...

 

 

혹은 고부 사이도 좋아보였는데

삼대가 집 하나 구매해서 함께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당시 나의 집주인 부친으로부터 땅을 물려받았다.

그 땅값이 비싸졌고 집주인은

그 자리에 빌라 건물을 세웠다.

빌라 꼭대기 층에 살면서 살뜰히 건물을 관리하였다.

 

 

그 때는 '다 대출이구만. 뭐 자기 집 한층 남았네.'라고 생각했다.

집 한채 얻는 대가로 건물을 쓸고닦으며 관리해야하는 주인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정말 복기와 자기반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8년 후에 보면...

지금까지의 전세상승분만으로도 대출을 갚을 수 있는 상황이다.

 

 

2집이 전세였다면

1집은 전세로 하고 다른 1집을 월세로 하면

고스란히 월세를 가져갈 것이고.

 

 

똑같은 시대, 똑같은 공간을 살았지만

누군가는 값어치가 없다며 땅도 집도 사지 않았고

누군가는 헐값에 땅과 집을 사두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세대에 걸쳐 나게 된다.

 

 

유형의 유산을 받아서

혹은 무형의 가르침을 받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