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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이야기/경제적 독립 프로젝트

가난의 대물림을 끊다 // 부동산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다

 

 

 

 

이 이야기는 블로그에 처음 쓰는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어떻게 조율했는지는

나중에 블로그에 글로 쓰던지 영상으로 만들던지

한 번 정리해볼까 한다.

 

 

나는 남편을 고집이 세다고 정의한다.

고집이 그냥 센 것이 아니라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자기 계획대로 해야 직성에 풀린다.

 

 

 

 

 

 

무엇 하나도 이미 본인 머릿속에 다 계획이 세워져있고

그것을 추진할 뿐이다.

상대방에게 그것을 설득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이미 다 결정이 나있기 때문이다.

 

 

 

 

답. 정. 너.

 

 

 

 

 

물론, 나를 애써 설득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런 시늉을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을 신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본인만을 믿고 의지하는

회피형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인데...

 

 

이건 아무튼 나중에 좀더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겠다.

 

 


 

 

이런 이유로 우리 집안의 대소사는

부엌에 어떤 냄비를 쓸까부터

어느 지역에 살지까지

모두 남편의 마음대로 하게 된 것이다.

 

 

10번 양보를 하면

하나 정도는 상대방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하는데

 

 

10번 양보를 받아도

그 다음 하나에서 의견이 갈리면

마치 처음 의견이 갈린 것처럼

양보 스코어가 0:0으로 리세팅 되어

나는 다시 양보를 해야했다.

 

 

어지간한 일은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냄비야 국을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에어콘이야 작동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하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자유도를 박탈당하면서

그리고 열번, 스무번 양보를 해주어도

다음번 선택지에서도

마치 한 번도 양보받지 않은 것처럼

제 뜻을 굽히지 않는 남편에게 지쳐갔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들었던 사건은

부동산이었다.

 

 

미국에서야 학생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졸업만 하면 이사가겠지~ 하고 살았으니

그래도 마찰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다.

그리고 남편은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본인의 기준에 따라

우리가 구매하고 거주할 집을 결정했다.

 

 

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각자의 일터(?)로 보내고

집에 앉아있으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 없었다.

 

 

마침 아랫집이 이사를 갔기 때문에

TV로 줌바 영상을 틀어놓고 운동이라도 해보지만

줌바를 하는 50분 내내

화가 치밀어 올라서 견딜 수 없어

분노로 몸을 흐느적 거리기 일쑤였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잘 해야지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소리를 지르게 되었고

몇 개월 이 상태가 지속되었다.

 

 


 

 

 

 

 

싸움의 발단은 이러했다.

나는 구도심으로 가자고 했다.

구도심은 인프라가 형성되어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같은 돈으로 구도심 기축(준공 10년차)으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부동산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있었는데

바로 신축에만 거주한다는 기준이었다.

길게 봐줘야 준공 2-3년까지였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구도심의 신축은 못가니

지금 살고 있는 택지개발 지역의

신축 물건을 구매해서 거주해야한다는 거였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도

분명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충분히 좋은 곳이지만

 

 

"내가 여기서 살기 싫었다"

 

 

무엇이든 이용하려면

원도심까지 가야하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 된다지만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꼴이었고

 

 

누군가는 영화를 1년에 몇 번이나 보냐

우체국을 한 달에 몇 번이나 가냐

은행을 한 달에 몇 번이나 가냐

경찰서를 살면서 몇 번이나 가냐

시청을 살면서 몇 번이나 가냐

할 수 있지만

 

 

이건 마치 결혼하는 예비신부에게 예비신랑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차례는 1년에 명절 2번만 하면돼

제사는 1년에 2번만 하면 돼

생신은 1년에 3분만 챙기면 돼

그 외에는 어버이날 정도 내려가면 돼..

 

 

개별적인건 한두번 뿐이지만

그런게 한둘이 아니었다.

 

 

 

 

내가 이 사람이랑 결혼하여
거주의 자유를 박탈 당하며 사는구나!

 

 

 

 

아무리 예쁘게 말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계약은 끝났고

나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내 기본권이 침해당한다는 생각마저 들때즘

나는 이혼을 확고하게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구도심의 기축 아파트는

가격이 훨훨 날아가고 있으며

 

 

내가 사는 곳의 가격은

'모두 제 자리~

모두 제 자리~'

하고 있다.